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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안철수는위기의 한국을 개혁할 수 있을까?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23>강철구 역사학자, 전 이화여대 교수 기사입력 2012-09-14 오전 11:22:32민의를 외면해 온 여의도 정치한국은 87년에 군사독재에서 벗어나며 본격적인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고그 후 민주주의 질서를 비교적 잘 정착시켰다.그래서 지금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하나로 손꼽힌다.게다가 70년대 이후의 산업화에도 성공했으므로 식민지에서 벗어나민주화와 산업화에 함께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민주주의 제도라는 것은 무엇일까?민의가 정치에 잘 반영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따라서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조정하고 법제화하는 의회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그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면에서 비교적 잘 정착했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도 한국의 정치는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도 불안정한가?기본적으로 정당제도와 선거제도가 민의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하향식 공천제도, 신인에게 불리한 불공정한 선거법,과다한 조직비용이나 선거비용 등 모든 면에서돈이 있거나 연줄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국회의원을 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그래서 유능하고 깨끗한 한 인재들이 발을 디딜 수 없다.또 각 직능대표를 뽑는 비례대표제라도 잘 운영되면그나마 민생을 좀 돌볼 수 있겠으나 그 선정도 제멋대로이다.공천헌금 파문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것을 돈줄로 생각한다는 의미이다.이렇게 정당제도나 선거제도에 큰 결함이 있으나지금처럼 각 정당이 불신을 받고 정치인들이 매도되는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김대중 정권 이후 역대 정권이 민생문제 해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한국사회는 1998년의 신자유주의 도입과 함께 큰 변화를 겪었다.고용 사정이 매우 나빠지고 양극화도 심해졌다.그에 따라 사회 전반이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했다.그럼에도 여의도 정치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가장 큰 이유는 보수정당이기는 해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고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서민을 위한다고 입버릇처럼 선전해 온김대중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했고노무현 정권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그러니 서민 대중이 달리 기댈 곳이 없게 된 것이다.
▲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여, 야당의 충돌.
열린우리당이 체결한 한미 FTA의 비준을 민주당이 반대하니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연합뉴스
진보정당이라도 제구실을 해서 상당한 정치적 공간을 확보했으면 나았을 것이나민노당은 대중성을 얻는 데 실패함으로써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2008년 총선에서도 고작5석을 차지하는 소수정당에 머물렀다.이 때문에 모든 정권이 낮은 지지율과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고 임기 중반기를 넘으면레임덕이거나 그에 가까운 현상에 빠졌다.그래서 다음 대선 철이 돌아오면대통령이 자기 정당에서 쫓겨나는 등 수모를 당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2007년 대선에서 국민들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 하나만을 믿고기업가 출신의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뽑았다.그러나 노골적으로 재벌과 대기업 편중 정책을 편 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상황은 더 나빠졌다.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기존 정당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그러자 여당은 4월 총선에서 당의 명칭과 로고,정책을 바꾸고 20대 젊은이들까지 후보로 영입하며 총력을 다했다.그리하여 다시 과반수 정당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반면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만 목을 맨 민주당은 자기혁신 노력에 소홀했다.민주통합당을 만들었으나오히려 연합정치론에 기대어 계파 간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는 구태를 재연했다.2008년에 비해서는 40석 정도 늘었으나 의회를 장악하는 데에 실패했고정치를 주도할 수 있는 동력도 만들지 못했다.통합진보당은13석을 얻기는 했으나 선거부정 시비에 휘말리며 이제 재기불능상태에 빠졌다.수습과정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가장 큰 힘이었던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이다.안철수 씨는 한국을 개혁할 수 있을까?그래서 나타난 것이 안철수 현상이다.기존 정치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대중이새로운 대안 정치를 위해 그를 내세운 것이다.그리고 그에 대한 지지율이 근 1년이나 계속30∼40%대를 오감으로써 이제안철수 씨는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었다.그럼에도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정치분석가들에 따르면 호남 표와그에게 우호적인 청장년층의 지지표를 다 얻는다 해도 40% 득표는 쉽지 않다.1997년 선거에서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씨와의 제휴를 통해 충청 표를 얻었는데도40.3%,이회창 씨는 38.7%를 얻어,고작1.5% 차이로 승리했다.2002년의노무현 대통령은 큰바람이 불었는데도 48.9%,이회창 씨가 46.6%로 겨우 2.3% 차이로 신승했다.언제나 한나라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 약 38%로 강력하기 때문이다.현재의 새누리당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지금 상태로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가장 유력시되는 이유이다.따라서 2012년에 야권이 승리하려면노무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것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안철수 씨의 인기는 지금까지 그의 신비주의 전략에 많은 부분 의존했다.모습을 꽁꽁 감춘 채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었다.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렸을 때도그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나아가 폭발적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그가 지금까지 정치에 대해 보여준 수동적이며 소극적 태도를 보면한국을 바꾸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하지도 않다.또 학생들에 대한 강연과 정치는 질적으로 다르다.따라서 지지율이 더 오를 수도 있으나 빠질 가능성도 있다.그가 '안철수의 생각'에서 대안정책으로 내놓은 것들도 잘 다듬어진 것은 아니다.많은 현안들에 대해 나름의 모범답안을 열거하고 있을 뿐국민의 절실한 요구에 대한 해결방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다.또 그 정책들을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방안도 막연하다.그럼에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해 보자.독자노선을 고수하여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일곽을 무너뜨리면서강력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면 사정은 다를 것이다.이 경우 양대 정당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일부 의원들이 이탈하여 새 정당으로 옮겨갈 것이다.그래도 소수파 정당으로서 강력한 야당들과 대적해야 한다.그렇지 못하다면 우선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민주당과 어떤 형태로든 타협을 해야 한다.호남 표를 얻으려면 도리 없다.이렇게 되면 민주당에 입당하든가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필연적이다.독자정당으로 집권하든,민주당 대표로 집권하든,민주당과 공동정부를 구성하여 집권하든 그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안철수 씨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정책 준비가 썩 잘 된 것도 아니고 지지세력을 제대로 결집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정권을 잡아 봤자결국5년을 민주당 세력에 끌려다니고 새누리당에 견제되다가 쓸쓸히 퇴장하는 수밖에 없다.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되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이야기이다.의회만으로 개혁정치는 불가능하다그러면 현 상태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개혁은 불가능할까?그렇지 않다.우리가 정치적 상상력만 동원한다면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타개해 나갈 수 있다.현재 한국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실제적인정치적 대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노동계급의 절반으로 약90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또 대기업 노동자의 절반 이하의 임금밖에 못 받는 대부분의 정규직,약 600만 명의 자영업자,350만 명의 농어민,약 300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는오늘의 신자유주의 상황에서 아무런 발언권도 행사할 수 없다.이들의 직접적 요구사항이 의회제라는간접민주주의 제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모두 휘발해 버리기 때문이다.따라서 아무리 절박한 고통을 호소해도 재벌과 보수세력이 지배하는의회를 통해서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최근에 SNS 같은 디지털 혁명을 겪으며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보수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형식적인 대의제도를 통해서는 진정으로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질서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물론 아직도 정당제도의 발전을 민주주의의 기초로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최장집 선생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어느 세월에 정당제도를 제대로 발전시켜 민주주의를 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인가?이는 맞는 말이기는 하나 너무 한가한 생각이다.그동안에 국민들은 다 굶어 죽을 것이다.어떻게 해야 할까?국민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우리의 정치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회와는 별도로사회경제문제의 해결을 당사자 사이의 직접적 논의와 타협을 통해해결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이것은 기본적으로 노동과 자본 사이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지나친계급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보통 코포라티즘(조합주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노동과 자본 외에 국가가 참여하여 지속적인 협의체를 구성하여 계급 사이의 타협을 추구하는 것이다.많은 나라에서 채용하나 그 강도와 수준에서는 차이가 많아서 단순히노동문제만을 다루는 나라도 있고 다른 문제들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는 나라들도 있다.우리도 시도했고 지금도 존재하기는 하나 유명무실한 노사정위원회는 그것을 본뜬 것이나강도는 낮은 것이다.전형적인 것은2차대전 이후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오스트리아 같은유럽 국가들에서 시행한 것이다.이들 나라에서 사회경제평의회나 경제사회협의회 등의 이름을 가지는 이 협의기구는 사회,경제문제에 관한 한 그야말로 국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노동, 자본, 국가의 대표가 참석하여 고용, 임금과 각종 노동문제뿐 아니라 조세,사회보장, 주택문제 등 제반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총괄적으로 협의하여 결정한다.그리고 거기에서 결정된 사항은 거의 그대로 입법화된다.그것은 이 기구에서의 결정이 민주적으로, 쌍방 간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고의회가 그것을 존중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17일 서울 여의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본회의 ⓒ연합뉴스
한국의 노사정위원회는 1998년에 처음 구성되었는데 노동·자본·국가의 대표가 국가의 긴급한 사회,경제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정책 방향을 합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실제로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고이에 불만을 느낀 민주노총 등이 탈퇴와 복귀를 되풀이하여 원활한 운영이 불가능했다.게다가 자문기구에 불과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도 못했다.따라서 이제 노사정위원회를 가칭 '경제사회국가최고위원회' 같은 기구로 개편하여국민들의 직접적인 요구사항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든다면의회제라는 간접 민주주의제도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다.따라서 간접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결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여기서의 문제는 '경제사회국가최고위원회'의 구성과 의결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물론 여기에는 한국적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그래서 자본과 국가 외에 노동 대표에는 조직노동 외에 비정규직이나저임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실업자, 노인 등의 대표들이 참석하여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할 것이다.과거 우리 노사정위원회에서 자본 측은 노동 측의 대표성을 문제 삼았었다.노조 조직률이 10여%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노동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비조직 노동의 대표나 다른 집단의 대표까지 참여하면이런 소리는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각 이해집단의 대표들은 단위기구에서의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뽑을 수 있다.비정규직에 한해 말한다면각 사업장 단위의 대표들이 각 지역단위 대표들을 선출하고 이들이'최고위원회' 대표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하여 이들이 자본 대표들과 현안을 논의하고정부 대표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재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여기에서 결정된 사항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의회에서 법제화되어야 할 것이다.이런 식으로 구성된 '경제사회국가최고위원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게 된다면이는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된다.그동안 정당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의회 안에서 수년간 논의되지도 못하고 처박혀 있는 수많은민생법안들을 즉각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또 이것은 의회정치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각 단위기구의 조직과 그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의식화된 대중이 지역보다 계급이나 직업,인구집단 등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점차 지역정치의 고질적인 폐해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전반적인 선거혁명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민족미래연구소에서는 한국혁명넷을 개설하고 '한국혁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나아가 참여를 부탁합니다.블로그 http://blog.naver.com/korevonet카페 http://cafe.daum.net/korevonet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korevonet트위터 https://twitter.com/korevonet /강철구 역사학자,전 이화여대 교수 목 잘리고 피 흘리는 추한 진보 vs.'안철수 우파' 등장! [정치 몰입, 2012
기사입력 2012-09-14 오후 6:42:32
누군가의 꿈속에서 나는 매일 죽는다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있는얼음의 공포-신해욱,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중그 놈의 장례 행렬 참 길기도 하다.한참 전에 죽은 것을 믿지 못하고 안고 업어 달려오다 보니 죽어 있어서,"이 놈은 죽었습니다!"선언했지만,누구는 그것을 죽어도 믿지 않고 또 누군가는 죽어도 내 자식 아니겠느냐고 끌어안아서,장례 행렬은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나 역시 그를 만나고 온몸에 이고 달려온 무수한 사람들 중 하나다.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작1년 만에 나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2003년11월 노동자대회 즈음에 말이다.배달호, 이현중, 이해남, 이용석, 김주익, 곽재규 열사. 그 해에만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신자유주의 노무현 정부와 자본에 맞선 저항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전국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불 붙었지만어떤 노동 운동 관료들의 선택은 투쟁을 전면화하는 것보다'이듬해 총선'에 있었다.총선에서 노동자 국회의원을 당선시켜 열사들의 한을 풀자는 것이었다.투쟁은 급격히 소강기로 접어들었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이듬해인 2004년 4월.민주노동당은 열 명의 국회의원을 원내로 진출시켰다.그것은 '정치'의 시작인가?정치라는 것을'사회 운동'과 철저하게 분리시켜 사고하는'정치학 박사' 박상훈은 바로그 점에 역점을 두어 '진보 정치'에 대한 악평을 늘어놓는다.그는 정치를'정당 정치' 혹은 '의회 정치'라는 협의 안에 가둠으로써현실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이며여러 가지 차악을 선택하는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인지 훈계한다.좌파는 '운동'은 참 열심히 하고 잘 하지만,정치에 대해서는 너무 아마추어적인데다 몽매하고 정파 정치의 패권으로 인해서오늘날 '진보'가 이 모양 이 꼴이 난 것이라는 얘기다.진보 정당의 정치인들이 아마추어적이라는 지적은 일면적 차원에서는 일리 있는 말일 것이다.또한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가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에서큰 해악으로 작용됐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문제는 그가 통합진보당 사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손문상)
며칠 전 통합진보당 탈당을 선언하고'혁신 모임' 구성을 통해"새로운 대중적 진보 정당을 건설할 것"임을 밝힌심상정-유시민-조준호 등의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노동 운동 우파 계열의스펙트럼에 위치한 정치 그룹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태에 대한 반성적 제스처 없이또 다시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심상정은 지난날 민주 노조 운동의 성과를 끊임없이 의회 내로 수렴시키고자 했던전형적인 의회주의 정치인이다.의회 내 그녀의 생산적 역할 중 의미 있는 일도 없지 않았겠으나패권주의적 정치 기획으로 진보 진영의 정치적 위신을 전국적으로 추락시킨'경기 동부 세력'과 지난 정권 신자유주의의 첨병 노릇을 했던국민참여당 계열과 합종연횡에 동조하고2011년 9월 진보신당 당 대회 결정을 어기고 탈당한 장본인이다.또 조준호는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현장에서 일었던 비정규직 노동자 조합원들과현장 활동가들의 울분 섞인 요구들을 무시로 일관했던 대표적인 중앙 관료 중 하나다.비정규직-여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자 운동의 변화를 도모해야할 오늘날에 있어서그는 혁신의 주체이기는커녕 혁신되어야 할 상징적 대상 중 하나인 것이다.박상훈이 이런 주요한 원인에 대해 침묵하는 이상 그가 말하는진보 정당 운동 위기의 원인 진단은 엇나갈 수밖에 없다.물론 소위"'운동권'들이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식의 비판이 합당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만약 부르주아 정치 질서에서의 온갖 장황한 술책들을 늘어놓는 것으로서의'전문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진단은 설득력을 갖추기 어렵다.오히려 '운동'에 있어서 원칙을 끈기 있게 지켜왔다면오늘날 노동자 운동이 이런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진보 정치의 실패는 1987년 이후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민주노총으로 이어온민주 노조 운동의 기반 자체를 모조리 의회 정치의 성과로 수렴시키고자 했던 것에 더 가까이 있다.이른바 진보 정치의 스타 정치인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볼멘소릴 하는 것처럼노동자 운동에 휘둘리기보다 끊임없이 노동자 운동의 체제 내로의 수렴과 '타협'을 선도했다.이쯤이면 모두 눈치 챘겠지만 우리가 아직도 끌어안은 채 놓지 못하는그 죽은 아이는 바로 '진보'다.언젠가 배우 고수가 영화 <고지전>에서전우인 신하균에게 비틀거리며 이미 일어난 것인지도 모르는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했듯,나는 진보가 아주 오래 전에 죽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죽음 이후에 새로운 것을 도래시키지 못하고 있기에,우리는 여전히도 그것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의 진보>(박상훈·심보선·장석준·
홍기빈·이택광·하종강·서동진·엄기호·박경신·
홍세화 지음, 이음 펴냄) ⓒ이음
<지금 여기의 진보>(이음 펴냄)는정치학 박사 박상훈을 비롯해 심보선, 장석준, 홍기빈,이택광, 하종강, 서동진, 엄기호, 박경신, 홍세화 등예술, 경제, 정치, 노동, 교육, 법학 등 다양한 분야에걸친 진보 진영의 명사 혹은 이론가들이 저마다의입장에서 진보의 현재에 대해 늘어놓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다양한 분야에 걸친 전문적인 분석과 입장들이지만이중 어떤 글들에 대한 인상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다른 영역이지만 저마다 전제로 하는이념과 역사적 평가가 조금씩 다르고종종 상충되는 견해들도 보인다.그러나 그것들이 제각각 경제, 예술, 생태, 정치 등다른 영역의 코드를 논제로 삼고 있기에논쟁의 핀트를 맞추기 쉽지 않다.기획에 있어서 실패가 아닌가 모르겠다.아무리 다양하게 끌어안는다고 하더라도아귀는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결국 독자들은 '지금 여기의 진보'의의제들이 다종다기하게 늘어진 채어떤 정치적 헤게모니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확인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문제는 바로 이것이다.이를테면 홍세화는"자칭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다름 아닌그 자유주의자들이 오늘날 소위'배제된 노동'을 더욱더 배제하면서 동시에 노동 운동 상층부의 관료들과는밀착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지적한다.이와는 다르게 박상훈은 정당 정치 중에서도 전문가적인 전술 구가의 필요성에 대해끊임없이 역설하는 방식으로 자유주의 정치를 옹호한다.위기의 원인을 서로 다르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또 변호사 박경신은 진보 진영이'표현의 자유'에 대해 갖고 있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지적하면서그것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그러기 위해 그가 요청하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신자유주의가 아닌근원적 의미에서의 정치적 자유주의다.이처럼 각자가 소환하는'자유주의'가 상이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고 진보의 위기로 짚는 원인들도 다르다.그러나 이 책에서 이것의 맥락적 차이들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은데그것이 개별 영역의 논의로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논쟁을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논의의 폭이 너무나 엷기에대체 어디서부터 맞춰 이야기해야 할지 맥이 잡히지 않는다.아마 이 책에 실릴 글들이 강연문으로 나왔던 일련의 강연들을 청취했던사람들에겐 그것이 아주 혼란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결국 '지금 여기의 진보'의 잔해들이 이토록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걸확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어쨌든 홍세화가 끊임없이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나노동 운동 상층 관료들을 향해 일갈하는 것은 자못 '홍세화다운' 태도다.그는 몇 주 전 국회 앞 기자 회견을 통해 발표한 진보신당의 대선사회 연대 후보에 대한 회견문에서도 지난 시절의'노동 운동'을 비판하며 그것을 '조직노동'이라고 뭉뚱그려 비판한 바 있다.나는 당원 게시판,SNS 등온라인상에서 그런 식의 수사로 가하는 비판이 별로 맞지 않다고 비판한 적 있다.그리고 홍세화가 계몽주의적 태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운동의 경향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구조적인 분석과 아래로부터의실천을 통해 가능한 것일 텐데,그는 각기 다른 운동들에 대한 시차적 관점을 가지려 노력하기보다'선생님'의 자리에 머무르려 한다.실제 진보 정당 정치인들이나 우경화된 노동 운동의 상층 관료들이홍세화가 지적한 관료주의적이고 우경화된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을'조직 노동'이라고 애매하게 설정했을 때에는 아예 엉뚱한 층위에서불필요한 오해와 오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우선 오늘날 우경화된 노동 운동의 흐름은 충분히 조직적이지 못해 항상 문제였지'조직 노동'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한 바 없었다.만약 민주노총이 한진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하청 노동자 파업,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에서부터 자본에 의해 자행된 일련의 금속 사업장파괴 공작에 조직적으로 맞섰다면우리는 노동자 운동의 추락에 대해 이토록 한탄할 일 없었을 것이다.지난 시기 진보 정당이 노동 운동의 성과로서 모조리 수렴되면서아래로부터 끊임없이 현장의 강화를 통해 조직적으로 유지되고쇄신되어야 할 노동조합 운동이 그 힘을 상실해왔기 때문이다.만약 홍세화가 '배제된 노동'이라고 칭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조직화의 전략을 강조하고 싶다면 더더욱 적극적으로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피력했어야 할 것이다.실제로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모든 공력을 가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들은,대선 정국에서 '선거 연합'을 도모해야 하는,'조직 노동'의 전망에서 활동하는 일련의 좌파 정치 조직들이다.이런 측면에서 하종강이 끊임없이 피력하는노동조합 운동의 중대성은 누차 강조해도 모자란 이야기다.어떤 면에선 그의 우직한 일관성과 어렵지 않은 해설이 가장 현명해 보이기까지 하다.한편, 장석준이 던지는'녹색 사회주의'의 의제는 흥미로울뿐만 아니라 논쟁적이다.오늘날 전 지구적 생태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좌파가 선택해야 할 전략은녹색 사회주의임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유럽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그리고 전술적으로 무엇이 강조되어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다른 글들과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따로 또 존재하는 듯한 인상이 든다.충돌 지점이 있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홍기빈의 몽매하고도 정념적인 비판들일 것이다.홍기빈은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성에 빠진 진보 세력이 다시금경제 문제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른바'살림살이 경제학'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그러나 그가 가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의 항목들은대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내용 안에 갇혀 있다.생산력주의와 역사적 진화주의의 한계에 갇힌 현실 사회주의 운동이역사적 곤경에 쳐했던 것을 거론하며 반복적으로 그것의 비실용성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다.일정한 오해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나는 그가 피력하는 '교조성'에 대한우려를 아예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마르크스주의가 무오류의 신화라는 환상은 지난날 사회주의 운동이 빠진 곤경에 대해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한다.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화의 문제의식을 견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그러나 홍기빈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완전한 기각을 주장하며구체적인 비판은 생략하고 그것이 변증법적 무오류의 논리성 안에 갇혀결국 교조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만 주장한다.그가 삶에서 만난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은정말 그렇게 우격다짐으로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진화주의적 역사 발전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힌 사회민주의자들이설득력 있는 논거를 지닌 역사유물론자보다 훨씬 많듯이 말이다.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항상 실천에 있어서 세상을 일거에 혁명할 수 있다는입장을 몽매하게 반복하는 것이라는 주장은지독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오히려 오늘날 좌파들은 도시 공동체에서,노동조합에서, 학교와 미디어에서 다양하고구체적인 실천을 도모해왔다고 말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반면 홍기빈이 예로 드는 스웨덴이나 영국의 비마르크스주의 제도주의좌파들이 오늘날의 체제의 기로 앞에 선 세계 좌파들에게 별다른귀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페이비어니즘이 득세했던 영국에서는 왜 노동당 스스로 변질되어신자유주의 개혁을 주도했었는지,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복지 국가 시대의 명성을 구가했던 스웨덴은왜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오늘날 추락하고 있는가?조만간 방한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주창하는 세계 체계론의 시각에서 이런'기적'은 스웨덴의 배후에 경제 식민지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데,홍기빈은 이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하다.이 지면에서 구체적으로 비판하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물론 나는 오늘날 좌파들이 새롭게 도전해야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모든 것을 자본의 음모로 돌리며 전위 정당 중심의 국가 전복의 필요성을반복해서 피력하는 것은 전통적 '전략'이 될 순 있을지언정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와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적 공백을 뒤엎을 만큼구체적 실천의 지표를 던져주진 못한다.그러나 유럽의 지나간 역사와 비교해 이런 특수한 정세에서 시도되었던이론을 현실의 간극에 대한 고려 없이 들이대는 것 역시 현실적이지 못하다.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대중 운동과 정치 그 자체가 파괴되고진보적 이념이 대중화되지 못한 채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홍기빈이 제시하는 살림살이 경제학의 실천의 가능성을 십분 동의한다고 하더라도우리는 협동조합 같은 제3섹터의 조직 역시도 신자유주의적 '협치(governance)'의블랙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홍기빈이 말하는 '살림살이 경제학'이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고 독립적이며변혁적인 전망 속에서 어떤 활력을 제공할 수 있으려면세계 체계의 변동과 국민 국가 내의 복합적인이데올로기를 아우르는 사회 운동 정치 전략 역시 필수적으로 요구된다.이때 현재에 걸 맞는 얼굴을 찾은 마르크스주의는 '몫 없는 자들'노동자 계급에게 여전히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현재-미래에 어떻게 '새로운 길'을 물을 것인가?심보선은 지난 희망 버스 운동에서 '신신좌파'의 탄생을 보았다고 말한다.그가 회고하기에 그것은'지도자 없는 리더십','조직 없는 조직화'의 과정이었다.희망 버스의 주체들은 자율성의 장소를 분쟁적인 공공 영역의 형태로 발견하고 또 발명했다.그러나 희망 버스 운동을 무언가 자생적이면서도새롭게 등장한 무엇으로 평가했을 때 놓치게 되는 역사적 기인도 있다.한진중공업 정리 해고 철폐 투쟁의 기원이 지난 시기민주 노조 운동의 역사 속에 놓여있다는 사실 말이다.김진숙이라는 투사를 낳은 것도 85호 크레인이라는 상징과 열사들의 목소리를 남긴 것도모두 민주 노조 운동이라고 명명된 노동자 운동의 바람직한 지향 속에서가능했던 것임을 쉽게 넘겨선 안 된다.더불어 희망 버스 운동에 대한 요청이 그간의 사회 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일었던 것 역시민주노총이라는 기제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 가운데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면서 이루어졌음을 기록해야 할 것이다.이런 점들이 거세된 채 어떤 새로운 현상을 평가할 경우'기적'에 대해 단순한 자생성과 어떤 아나키하고포스트모던한 흐름에 기인한 것으로 오판하기가 쉽다.이데올로기와 정세에 대한 면밀하고 정확한 역사적 평가가 요구되는 이유다.*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인 서동진의 '전진하는 미학 : 사회와 정치 그리고 예술의 동요'는위와 같은 낭만주의적 인식을 겨냥하면서 비판적 미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이 글은 신자유주의 금융화 시대의 예술이 빠진 곤경과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미학의 오류를 비판하며 예술에서 우리가 아직 새로운 정치를 발굴할 수 없다면"잠시 예술을 잊어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요컨대 예술은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과 해후할 때 다시 재림하고 또 부활하기 때문이다.우리가 지배적인 질서에 파묻히고 싶지 않다면, 더디더라도 지난한 관계 속에서'정치'를 굴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예술이 그 자체로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듯,또한 정치가 어떤 새로운 상상력과 모험 없이는 결코 구제될 수 없듯,오늘날 예술과 정치의 분리 속에서어떤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좌절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파의 불만>(김민하·김진호·최태섭·박연·
박권일·이택광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이 글이 현실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맞선비판에 충실하듯이 이택광과 박권일을 비롯해여섯 명의 필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우파의 불만>(글항아리 펴냄)은 한국 사회에 새롭게 출현한우파들과 그 주위의 불안한 징후들에 대해 분석하고비판하고 있다.이택광은 그간 꾸준하게 지적해왔던 것처럼 영화<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을 통해 중산층이 아닌'중간 계급'이라는 새로운 우파의 등장과그들의 불만을 차근차근 분석한다.두 영화에 대한 예상치 못한 환호를 통해중간 계급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사회를 인식한다.즉 "아무도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히스테리적 인식을 통해 사회에 대한공포를 드러낸 것이다.또한 이택광은 오늘날 진보의 문제가 더 이상정당 정치 안에서 작동되지 않고 축출당했다고 말하며이러한 상황에서의 진보의 재구성이란 당연하게도정당 정치 바깥의 정치에 대한 고찰에서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정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이는 <지금 여기의 진보>에 실린서동진의 견해와도 어느 정도 상통한다.그밖에 다른 다섯 명의 필자들은 이런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가운데경제 개혁에 있어서의 신자유주의적 흐름,기독교 우파,인문 우파,멘토로 명명되는우파 이데올로그,반이주민 정서의 확산 속에서 드러나는 '네오-라이트(neo-right)' 노동 담론을 다루고 있다.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역사적 배경이나 인문학에 대한 기이한 환호 현상,멘토로 대변되는 자기 계발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나로서는 반이주민 정서를 둘러싼 노동 담론에 대해 분석한 박권일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다.얼마 전 광화문역 인근을 지나가다가 다문화 정책 반대 시민 단체의 소규모 시위 현장을 보았던충격적인 경험 때문이었다.박권일이 말하는 것처럼 반이주민 정서는 애국주의자로서의자기규정을 기본으로 해 민족주의 담론,경제 담론과 결합되어 복잡한 사회적 적대를 구성하고 있다.이런 '네오-라이트'들의 불만이 끊임없이 사회적 적대로 재생산되고일자리 부족과 계급 내 경쟁에 대한 피로감으로 노동자 계급 내의단결을 저해할 경우 우리는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몇 년 전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정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는데이에 대한 민주노총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모 상층 활동가가 했다는 악명 높은 망언이 있다."그렇습니다.정말 심각하죠.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우리 한국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합니다."이런 곤경을 극복하고 인종주의적인 반이주민 정서를 돌파하려면노동자 운동의 확장과 인종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응과 더불어 그것이 이주노동자 운동과 조우해야만 한다.최근 이주 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에 대한 제한이 주어져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고용주들에게만 명단이 돌아가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고용주들의 명단이 주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업장 선택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브로커 개입 방지를 위한 사업장 변경 제도 운영 개선 내용'이 발표되었는데이런 사안에 대한 국제주의적 시야에 입각한 국내 노동자 운동과 사회 운동의 연대가 절실하다.얼마 전 용역깡패들에 의해 침탈되어 폭력을 당했던SJM 안산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녀들이 공장 밖으로 쫓겨나오게 되었을 때SJM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 공장의 노동자들이 파견되어대체 인력으로 투입하게 된 사태를 맞이하였다.이때 남아공의 금속노조가 보인 연대가 바로 국제주의적 연대의 모범이 아닐까 생각한다.SJM 자본이 한국으로 보낸 남아공 노동자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경우남아공 금속 노동자 총파업을 벌이고 거래처인 현대자동차를 압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이런 연대의 경험 속에서 노동자 계급이 갖고 있는 인종주의,반이주민 정서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처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양상,우파의 불만을 통해 재현되는 불안의 징후들은 사회의 주체적 구성원들인노동자들이 모종의 대안 이념과 사회를 재구성해나갈 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이택광은 사회 체제의 모순은 존재하는데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우파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이 간극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제하는 것에 그 가능성을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반면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를 통해 간극 자체를 다시 응시하고질서 재편을 도모하고자 하는 좌파적 도전도 있을 것이다.오늘날 이런 도전이 성공하려면 좌파에게나 진정한 의미의자유민주주의에게나 각자도생의 길이 열려야 한다. 불만의 주체로 등장한'새로운 우파'에겐 그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장이 열려야 하고,노동자 계급에겐 불안정한 노동과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계급적 단결과 정치적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바로 이런 노정 속에 대선이 놓여 있다.이 두 권의 책을 덮은 후 우리는 무엇을 도모할 것인가?그때 저마다 진보라는 기표가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이미 오래 전에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서 말이다.차라리 그때 우리는'진보' 대신 다른 이름을 필요로 할는지도 모른다.장석준은 그것이'녹색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내용에 있어서 좌파가'생태주의'와 결합을 이뤄내는 것은 필연적인 과제일 게다.그러나 당면한 정세에서 이름을 짓는 것에 앞서 중요한 것은 흩어져 있는제 좌파가 우경화된 노선에 빠져 있던 대중 조직과 함께 힘을 모으고2013년 이후 계급 투쟁의 비전이 있는 길로 '진보 진영'을 견인하는 것이다.노동자 민중 대선 후보 전술에 대한 좌파 단위들의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한다.아무쪼록 '공동선'을 찾는 것에 주력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노조 조직률 10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노동조합도 없는,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이를테면 민주통합당의 두 자유주의적 경향의 대선 후보 가"저녁이 있는 삶"(손학규)이나"사람이 먼저다"(문재인)라는 다소 모순적이며인간주의적인 제스처를 내밀었던 것의 모순성을 있는 그대로 폭로할 수 있는,동시에 자본주의의 위기와 생존 불안의 위기에서 좌파적인 대안이란 어떤 것인지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드러내는 슬로건을 말이다.바로 그 '공동선'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지금 여기'의 진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지금까지 우리가 본 얼굴은 끔찍한 형상이었다.2013년 이후 세계의 경제 상황과 급변하는 정세는'진보'의 새로운 얼굴과 아래로부터의 꾸준한 실천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다.최근에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노동자 운동의 혁신'에 대한 과제와'민중의집','태일이네','노동자회관' 등의 이름을 한 사회 운동들이 그 양 날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홍명교 영화 노동자